보여진 히든 카드는

처음으로 사표를 냈다.

아침부터 날씨도 우울하고 기분도 좋지 않았는데, 점점 압박감이 심해지는 걸 느꼈다.
그래도 최대한 억누르고 있었는데, 부장님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얼굴로 오셔서는 분석치를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해 드렸고, 이렇게 조치를 했다고 했지만, 뭔가 개운하지 않으셨는지 다른 것도 물으셨는데,
내가 좀 당황했는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사실 내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이긴 했지만, 모른다고 해서 당장 큰일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대안을 이용해 충분히 해결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그부분을 소홀히 했었다.
그리고 다들 평소에 그런 분위기가 있었기에, 어느새 나도 그렇게 보조를 맞춰가게 되었다.
분명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이 시점에 제가 잘못한게 뭔가요?'하고 따지고 말았다.
점점 호통이 심해지자, 첫번째 실수를 했다.

저렇게 대응하면 안되고, 그냥 들어주고 말았어야 했는데,
잠겨 있던 '화'의 자물쇠가 풀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러자 더 목소리가 커졌고, 점점 더 꼬여버렸다.
예전 잘못부터 시작해 자신이 분명 '윗사람'이라는 걸 강조 했다.
누가 아니라고 했나? 윗사람이면 윗사람 다워야 하지 않은가!
더는 못 들을거 같아, 몸을 움직여, 서랍속에 있는 이미 써놓았던 사직서를 꺼냈다.
그리고 오늘 날짜를 적었다. 두번째 실수까지 해버렸다.

그러더니 짐짓 내 행동을 바라보다가 끊겼던 말씀을 이어가셨다.
'이러니까 내가 니들한테 한마디도 못하겠다'로 다시 말을 이어가셨다.
그리고 '니가 지금 이게 잘하는 짓이냐?' '아니오, 저도 잘못되었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라고 꼬박꼬박 잘 따졌다.
'제 능력이 안되서 사표 냅니다. 그리고 이 사표는 이미 써두었던 것입니다.'라고 덧붙혔다.
 부장님도 최근 내가 점점 의욕이 떨어져 간다는 걸 알고 있다.
일단 앉으라고 하시며 얘기를 이어가셨고, 십분정도 부드럽게 풀어가려고 노력하셨다.

나로써는 부장님이 원하는 인간이 되지 못했고, 최근엔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기에는 이곳에서의 미래가 밝지 않고, 일자체가 위험했다.
결정적으로 그런 맘을 먹게 된게, 내가 외국인 생산직 노동자의 월급의 60%정도 밖에
받지 못한 웃지 못할 사실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했고, 어학연수도 갔다와 최소한 이 회사에서는 가장 영어실력도 좋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배운 학문이 이곳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도 회사에 대우를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회사도 대우를 해주지도 않을거라는 걸 알기에 내가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 회사에 들어왔는가?
그 당시 나는 좀 절박했었다.
서류전형조차도 통과되지 못했고, 백수시간만 길어지는 차에 기회가 생겼고,
나름 성실하고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은 그런게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
사실 내가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어버리는 타입이기에
뭔가 가시적인 성과나 변화가 보이지는 않고 무던히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지치게 되었다.
또 최근에 조금씩 다치기도 하고, 엊그제부터 두드러기 때문에 고생하게 되자 극단적인 상황까지 온거 같다.

일단은 사표는 수리되지 않고, 거부 되었다.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기에 그 시점에 밀고 나가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떠나버린 기차는 왠만해선 되돌아 오지 않고,
보여진 히든카드는 더이상 히든카드로써의 가치가 없다.

by 티디 | 2008/10/10 19:47 | 주저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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